충현교회 부목사 출신들, 추모집 편찬
편집인 김하진 목사 “본받을만한 분”

충현교회 김창인 목사 추모집을 기획하고 편찬한 김하진 목사. 김 목사는 6년 동안 충현교회를 섬기며 김창인 목사에게서 목회를 배웠다.
충현교회 김창인 목사 추모집을 기획하고 편찬한 김하진 목사. 김 목사는 6년 동안 충현교회를 섬기며 김창인 목사에게서 목회를 배웠다.

‘꿈을 향한 끝없는 도전’ ‘재치와 유머를 지니신 영적 거장’ ‘한국교회의 산 증인’ ‘역사의 돌비에 새겨진 분’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은 사람’….

고 김창인 목사(충현교회)에 대한 기억은 다양하지만, 고인이 한국교회를 이끌어나간 목회자이자 지도자였으며, 자신에게 영적 아버지였다는 고백은 동일하다.

김창인 담임목사가 시무하던 시절, 충현교회를 섬겼던 목회자와 장로 20명과 고인과 가깝게 교류하던 목회자 11명이 고인의 삶을 기억하는 추모집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 소석(小石) 김창인 목사를 기리며>(쿰란출판사)를 펴냈다. 편집인 김하진 목사(동원교회 원로)는 “1960년대 이후 한국교회에 큰 두 기둥이 계셨다. 바로 충현교회 김창인 목사와 영락교회 한경직 목사다. 한경직 목사를 기리는 책은 많지만, 상대적으로 김창인 목사는 아들과의 문제로 인해 많은 업적들이 가려져 있었다. 고인의 족적을 남기는 것이 한국교회에 큰 보탬이 된다는 생각이다”며 책을 편찬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책은 고인에 대한 막연한 칭송이나 전해들은 후일담이 아니다. 고인에게 직접 목회와 신앙을 배운 제자들이 집필에 참여해 고인의 공과(功過)를 사실대로 전하고, 그 가운데 교훈을 찾고 있다. 7년 동안 충현교회 부목사로 사역했던 김창근 목사(광현교회 원로)는 “누구보다도 나라를 사랑하셨고, 하나님을 사랑하셨고, 인자하시면서 때로는 엄격하신 인격자이셨다. 지금도 순간순간 목사님이 그립다”며 고인을 기억했다. 1984년 충현교회 홍콩 선교사로 파송받았던 오치용 목사(꽃섬출애굽교회)는 ““홍콩에 가면 북한선교를 해줘. 북한선교를 부탁해” 이 말씀이 나로서는 평생에 남는 숙제가 되었다”며 선교를 향한 고인의 열정을 기억했다. 김창인 목사의 맏아들과 고등학교 동창이자, 기독교북한선교회를 이어받아 섬긴 길자연 목사(왕성교회 원로)는 “김창인 목사님은 인생 말년에 아들 문제로 참기 어려운 시련과 고난을 당하시면서도 언제나 인자하셨다. 언제 ‘허허’ 하시면서 만면에 웃음을 잃지 않으셨고, 그렇게 불편한 휠체어를 타고 생활해야하는 노년기를 보내시면서도 목사님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웃으시면서 다가오시곤 하셨다”고 고인을 회상했다.

책을 구상하고 2년 가까이 원고를 모으는 등 출간에 힘쓴 김하진 목사는 “한 세기에 나올까 말까한 인물이셨다. 생활도 그렇고, 목회도 그렇고, 인품도 그렇고, 모든 면에서 본받을만한 인물”이라고 고인을 회상하며, “이번 추모집이 고인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떠나도, 오고 오는 믿음의 후배들에게 김창인 목사를 알리는 도구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